꺼지지 않는 유럽 디스코의 열기, 그것이 유로댄스다. 유로댄스란 8, 90년대에 유행한 유럽산 댄스 음악을 칭하는 말로 대표적인 뮤지션으론 2언리미티드, 모던 토킹, 런던 보이즈 그리고 아쿠아가 있다. 유로댄스는 어떤 장르이며 왜 하필 유럽에서 발현되었는가 이 이야기는 80년대 초, 디스코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시대상을 우선 집고 가야 한다. 당시 미국은 디스코를 대신해 하우스, 테크노 같은 새로운 댄스 음악 장르들이 등장하던 시기였는데 초기엔 대중의 인식이 락과 메탈보다도 좋지 못해 주류 음악 시장엔 곧바로 뛰어들진 못한 상황이었다. 반대로 유럽에선 꾸준히 디스코가 유행했고 디스코 스타일의 음악과 클럽 문화가 계속해서 발전되었다. 이 때문에 유럽은 댄스 음악의 신흥강자이자 본고장으로서 여겨지는 지경까지 온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태어났던 대표적 장르가 바로 유로 댄스였던 것이다. 유로라는 어감 때문에 이니셜 D라는 작품을 떠올릴 수도 있는데 그것은 유로 비트다. 유로 댄스랑 기원만 비슷하고 색깔이 서로 다른 장르다. 유로댄스 쪽은 8, 90년대의 한국에서 롤러장 음악이라 불리던 나이트클럽의 댄스 음악들을 떠올리면 된다. 2 언리미티드의 "Twilight Zone'과 "No Limit" 이 두 곡은 유난히 한국 예능 프로에서도 자주 쓰이던 곡들이기도 하니 들어보면 어떤 느낌인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서브 컬쳐계에서 유행했던 우마우마 댄스의 원곡 'Caramelldansen' 마이야히송으로 불리는 O-Zone의 'Dragosetea Din Tei(보리수나무 아래서의 사랑)' 같은 곡들 또한 대표적인 유로 댄스라 언급할 수 있다. 이들 모두는 디스코 기반이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탈로 디스코다. 70년대 후반부터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디스코를 지칭하던 장르명인데 본토의 디스코보다 더욱 신시사이저의 사운드가 강조되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이탈로 디스코는 조반니 조르지오 모로더라는 전자 댄스 음악 프로듀서가 선봉장이었는데 그는 전자 음악의 대부이자 신시사이저 사운드의 창시자로 불리는 거장이다. 한국에서는 88 서울 올림픽의 주제곡인 '손에 손 잡고'의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다. 1977년 발매된 도나 서머의 'I Feel Love'가 조르지오 모로더의 대표적인 작업물로 해당 곡은 독일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이탈로 디스코가 전 유럽에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I Feel Love'는 멜로디 반주가 모두 신시사이저로 이루어진 최초의 디스코 곡이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전자 악기가 메인으로 쓰인 이 구성은 하이 에너지를 비롯해 독일과 유럽, 여러 댄스 음악들에 영향을 끼쳤다. 독일은 'I Feel Love'가 유행하기 이전부터 이미 유럽 댄스 음악의 메카로 여겨지던 국가였는데 그 이유는 크라프트베르크라는 일렉트로닉 밴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70년대 초 서독에서 결성된 크라프트베르크는 전자 음악의 대중화를 이끌어 미래 지향적인 사운드를 대중에게 선사하며 현재 모든 전자 댄스 음악의 전반적인 기반을 다졌다. 그러니 일찍이 전자 음악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독일과 이탈로 디스코가 만나게 된 거니 그에 따라 자연스레 주변 유럽 국가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란 말이다. 그렇게 80년대 초부터 전 유럽을 장악한 이탈로 디스코는 유로 디스코의 가장 대표적인 하위 장르로 알려지며 유로 디스크의 전체를 대변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반드시 이야기 해야되는 사건이 있는데 바로 1979년 미국에서 발생한 디스코 폭파의 밤이다. 이 사건은 모든 댄스 음악 변천사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디스코 LP를 부수며 폭동을 일으키는 광기의 현장을 직접 목도한 뮤지션들과 음악 방송국에서는 그 분위기에 잠식되어 디스코라는 용어 자체를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힘들어했고 그렇게 디스코를 대신해 다른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름이 댄스 팝이다. 당시의 유럽은 위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해당 사건을 괄시할 순 없었고 그 여세를 따라 유로 디스코 또한 디스코 대신 유로 댄스란 이름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미국의 댄스 팝은 MTV의 등장으로 인해 과격한 펑크 락이 얌전한 뉴 웨이브로 변했던 것처럼 비슷한 수순을 밟아갔는데 댄스 팝 또한 뮤지션 개인의 스타성과 세련된 뮤직비디오가 중요한 어필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한 명의 가수, 뒤쪽의 여러 명의 백댄서가 절제된 춤 퍼포먼스를 칼군무로 펼치는 모습이 댄스 팝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초기 댄스 팝의 대표적인 예시다. 디스코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을 떠올려보면 바로 4비트 기반의 춤을 추기에 좋은 쉬운 박자감이 떠오를 것이다. 이 특유의 박자감이 디스코 유행의 핵심 기반이었는데 미국 댄스 팝에서의 박자감은 디스코식의 단순하고 쉬운 박자감을 굳이 고수할 필요 없는 자유로운 방식을 취득했다. 그러니 미국 쪽 댄스 팝은 디스코처럼 온전히 클럽에서만 울려 퍼지기 위했던 음악이 아닌 팝 스타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을 리스너들이 감상하는 방향으로 틀어져 고난이도의 세련된 춤 퍼포먼스가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다시 유럽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유럽에서의 디스코는 유로 댄스로 이름만 바뀌고 디스코 자체의 유행은 쭉 유지되었다 했다. 그러니 유로 댄스는 디스코 특유의 쉽고 단순한 박자감을 그대로 계승했다. 디스코가 추구하던 춤에 대한 열정과 사랑 같은 정체성 또한 유사한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거기다 80년대 중후반 영국에선 창고나 주차장 같은 열화된 공간에서 열리는 게릴라성 파티 문화 레이브(Rave)가 성행하기 시작해서 유로 댄스와 레이브, 이 두 문화 덕분에 80년대의 유럽은 그야말로 댄스 음악의 르네상스가 펼쳐졌다. 가장 먼저 두각을 드러냈던 유로 댄스 뮤지션은 디터 볼렌과 토마스 안더스로 구성된 유로 댄스 듀오 그룹 모던 토킹으로 이들은 유로 댄스의 성지인 독일에서 결성되었다. 1984년 데뷔 싱글 'You're My Heart', 'You're My Soul'이 자국을 포함한 전 유럽에서 대히트를 치게 되며 유로 댄스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그들의 영향력은 아시아에도 끼쳐 한국에 여러 유로 댄스곡들이 우후죽순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 중엔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유로 댄스 듀오 런던 보이즈의 노래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1986년 영국에서 결성된 유로 댄스 그룹이었는데 멤버인 에뎀 에프라임, 데니스 풀러 둘 다 독일에서 주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이탈로 디스코 풍의 신시사이저 사운드, 춤추기 쉬운 박자감이 그대로 음악에 발현되었다. 런던 보이즈의 가장 표면적인 특징은 바로 다부진 마른 근육 체형과 격하고 역동적인 안무다. 다만 말만 격하다고 표현할 뿐이지, 디스코 때처럼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간단한 안무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댄스 팝은 '나의 멋진 모습과 화려한 춤을 봐'와 같은 느낌으로 팝 스타 위주의 성향이었고 유로 댄스는 '함께 노래하고 춤추자' 같은 느낌으로 디스코, 클럽 음악과 같은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미국 댄스 팝의 성향은 80년대 중반부터 보이밴드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등장과 함께 점차 지금의 아이돌 음악과 비슷한 형태로 변하게 되었다. 영국도 이러한 흐름을 받아들여, 1996년 때부터 스파이스 걸즈라는 아이돌 그룹이 대세가 되었는데 그녀들의 쾌속 행진을 견재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덴마크 출신의 유로댄스 그룹 아쿠아다. 아쿠아는 97년에 발매한 싱글 'Barbie Girl'을 통해 영국에서 1위, 빌보드 핫 100에선 7위의 성적을 얻으며 스파이스 걸즈를 눌렀고 90년대의 대표적인 유로 댄스 그룹으로 알려진다. 2000년엔 2집 "Aquarius"를 발매해, 유로 댄스의 유행이 계속해서 건재할 거라 예상되었지만 2001년, 아쿠아는 갑작스레 그룹의 해체를 선언한다. 거기다 자신의 말더듬증을 스캣 창법으로 승화했던 유로 댄스의 또 다른 주축 스캣맨 존 또한 1999년 세상을 떠나며 사실상 유로 댄스의 계보는 2000년을 넘어가며 마무리 단계로 진입하게 되었다. 2000년대 중반엔 유로 댄스와 테크노의 결합을 시도한 이탈로브라더스가 등장하긴 했지만 그들의 본격적인 전성기는 2010년대 초 EDM 열풍이 시작되고 나서야 맞이했다. 결국 유로 댄스는 유행에 뒤처졌고 2000년대 초중반은 미국식 팝 스타 위주의 댄스 팝이 시장을 장악하게 되었다. 다만 이탈로브라더스의 경우처럼 유로 댄스의 여정은 EDM 유행의 기반이 되어 춤을 위한 열정으로 살아남았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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