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에 숨겨진 또 다른 이면이자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폭발적인 몰락을 동시에 경험한 디스코에 대해 설명 할 것이다. 디스코는 버블경제와 참으로 비슷한데 폭발적인 성장과 동시에 폭발적인 몰락도 함께 경험했기 때문이다. 디스코는 Funk를 기반을 두고 70년대 등장한 장르였다. 60년대 말부터 녹음된 음악을 주구장창 틀어 주던 나이트클럽 디스코텍이 미국과 영국에서 유행했는데 디스코는 이곳에서 파생했다. 초기 디스코텍에선 펑크 곡들을 주로 틀어 줬는데 그 곡들이 댄스를 추는 당시 분위기에 따라 점차 박자가 빨라지자 디스코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려졌다. 디스코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는 펑크 보다도 쉬운 댄스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쉽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바로 '박자' 때문이다. 16비트인 펑크와 달리 디스코의 박자는 4비트로서 박수 4번에 정박자로 춤추기만 하면 되는 정말 쉬운 박자란 소리다. 다만 접근성이 좋아졌을 뿐 디스코는 클럽에서만 트는 음지 장르였다. 깊이가 없고 경망스럽다는 평가를 듣는 찾는 사람만 듣는 마이너한 장르였지만 이러한 상황에 변화를 준 것이 1977년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가 개봉했을 때이다. 수려한 외모의 존 트라볼타가 신분 상승을 꿈꾸며 클럽을 제패하고자 노력한다는 이야기의 영화는 디스코의 멋스러움과 화려함이 강조되었고 이 영화는 대중에게 환호를 받아 큰 성공을 거둔다. 영화의 OST인 비지스의 사운드트랙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사운드트랙 음반이 되면서 그들이 만든 디스코의 색채는 70년대 중후반의 팝 문화를 상징하게 되었다. 디스코의 색채는 멋짐과 화려함으로 포장되어 일반적인 삶을 살던 중산계층 서민들을 자극했는데 그러한 자극이 사람의 마음속 나르시시즘을 일깨워 디스코 유행의 핵심 요소로 작용되었다. 스트레스를 발산하기 위해 멋지게 치장하고 클럽에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좋게 말하면 화려하고 부티나 보이는 열정적인 장르 나쁘게 말하면 겉만 번지르르하게 포장된 현실 도피성 장르라는 이중적인 모습이 디스코의 정체성이었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는 사실 디스코 문화에 대한 이면을 보여주는 내용이었지만 사람들은 디스코의 밝고 화려한 모습인 복장과 분위기만을 기억한다. 당장 디스코를 떠올려도 화려한 불빛 아래에서 통이 큰 바지를 입고 아프로 머리를 한 춤추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지 이면은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시기상으로 베트남전이 막 끝난 시점이라 미국 자체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인종차별과 여러 범죄의 내용들이 담겨 있다. 디스코가 현실 도피성 장르였다는 말은 이러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삶이 고달프더라도 디스코가 있으면 그 순간 만큼은 현실을 떠나 스타가 될 수 있었으니 수많은 클럽 죽돌이, 죽순이들이 양성되었다. 다만 디스코는 무지성 옹호를 받아도 되는 장르는 아니다. 디스코의 인기는 너무 많은 것이 문제였다. 디스코가 주류 음악 시장에 완전히 안착한 이후 영향력이 미친 듯이 커져서 백인들의 성역이었던 락까지 침범했다. 디스코가 음악 시장을 장악한 후 우후죽순 너도나도 디스코를 시도하게 되었다. 시대의 흐름이 디스코이니 너나 할 것 없이 유행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것이 댄스 음악과는 연관 없던 락 밴드들도 포함했다. 이 위세를 무시할 수 없었던 여러 뮤지션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락 뮤지션의 상징이라 볼 수 있는 비치보이스의 브루스 존스턴이랑 로고로 유명한 롤링 스톤즈조차 디스코를 시도했으니 당시 디스코의 위상이 음악 시장에서 종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 락 팬들은 여러 악기들이 쓰인 락이야말로 진짜 음악이라며 주장하고 디스코는 신시사이저와 기계로 만들어진 가짜 음악이라며 경계했고 디스코의 계보 또한 흑인 음악에서 파생 되었다 보니 인종 문제도 겹쳐서 인종 혐오나 차별의 감정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혐오가 가중 되어 갈 때 나온 인물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스티브 달이라는 사람이다. 당시 스티브는 락 담당 DJ였는데 그가 소속된 WDAI라디오 에서는 디스코의 비중을 늘리기 위해 스티브를 해고하였다. 이로 인해 원래 디스코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 스티브는 이일을 계기로 디스코를 혐오하게 되었는데 화가 난 스티브는 '디스코는 구려'란 슬로건을 외치면서 이벤트를 준비했는데 그 이벤트는 바로 야구 경기 중간에 다량의 디스코 LP들을 모아 모두 터트려 버리는 것이었다. 당시 개최될 야구 구장의 시카고 삭스는 어그로가 끌려 관중들이 많이 올 것이라 생각해 협조하였고 안 듣는 디스코 LP를 가지고 오면 티켓값을 할인해 준다고 하여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979년 7월 12일은 광기에 밤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밤이 되었다. LP들이 타오르자 이에 흥분한 수천 명의 관중들이 경기장에 난입해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장르에 대한 물리적인 공격이 펼쳐졌다는 대중음악사상에서 전례 없던 기이한 순간이 일어난 순간이다. 단순 헤프닝 정도로 끝날 수 있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디스코는 정말로 쇠퇴하게 된다. 아마 디스코 음악에 대한 분노와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 후 주류 장르였던 댄스 음악들은 힘을 잃고 저번에 설명한 90년대 얼터너티브의 바람이 불기 전까진 쭉 락과 메탈이 주류를 장악하며 시장을 지배했다. 한동안 디스코는 입에 담지도 못할 정도로 분위기가 냉담해져 원래의 고향인 음지로 돌아가게 되었고 클럽 음악 장르 중 하나인 하우스로 그 형태가 변해 댄스 음악의 새로운 방향이 되었다. 디스코는 짧은 전성기였지만 존재감은 폭풍과도 같아 대중과 뮤지션 모두를 헤집어 놓았다. 디스코의 등장과 퇴장은 클럽 음악 장르인 하우스의 태동이자 이후에 락 메탈이 맞이할 몰락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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