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메탈 최후의 전성기이자 대중음악사상 가장 화려했고 타락했던 장르이다. 글램 메탈이란 80년대에 유행한 헤비메탈의 한 종류이다. 기존의 헤비메탈과 음악적 형태는 비슷했으나 대신 외견적인 치장이 도드라졌던 장르였다. 특히나 장발의 머리와 앳된 외모가 돋보였는데 그래서 헤어 메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다만 해당 이름은 멸칭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밴드 신데렐라가 바로 그러한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었던 대표적인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머글리 크루', '건즈 앤 로지스', '포이즌' 같은 이들도 대표적인 글램 메탈 밴드들이었다. 이들 대부분이 서부 지역에서 결성되었기에 LA메탈 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많이 쓰였던 이름은 팝 메탈(Pop Metal) 이었는데 그 이유는 헤비메탈이 대중음악사상 가장 대중 친화적 성격을 지녔었던 시점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렇게 여러 이름으로 불려졌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당시의 대중들이 글램 메탈을 미디어 속에서 자주 접했었다는 걸 증명하는 바였다. 글램 메탈이 이토록 대중들에게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로는 여러 가지 요인들을 논할 수 있는데 우선 디스코가 70년대 말 몰락을 겪으면서 대부분의 흑인 음악 장르 계열들이 힘을 잃게 되었고 반대로 백인들을 상징하던 음악 장르인 락과 메탈, 뉴 웨이브의 인지도가 커졌다는 점과 동시에 MTV의 등장으로 과격함만을 추구하던 락 가수들이 외견을 가꾸자 점차 세련함이 생겨나 액슬로즈, 세바스찬 바르, 본 조비 같은 스타성을 겸비한 락 스타들이 대세가 되었다는 점, 그리고 음향 장비의 발전으로 대형 콘서트장에서의 공연 문화가 활성화되었다는 점까지 이러한 요소들 덕에 글램 메탈은 시기적으로 80년대 팝 문화의 그 자체를 대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글램 메탈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던 경위도 일찍이 화려함을 중시하며 70년대 초에 유행한 글램 록에서 따온 것이다. 때문에 80년대부턴 음악 시장 전체가 글램 특유의 화려함을 중시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글램 메탈의 초석이었던 글램 록의 글램(Glam)이란 단어의 시작부터 살펴보자면 우선 글램의 상징적인 비주얼은 70년대 초, 티렉스(T.REX)의 보컬 마크 볼란에 의해 구축되기 시작했었는데 더 정확히는 매니저의 아내였던 첼리타라는 한 여성의 아이디어에서 출발되었다. 그녀는 마크 볼란의 이쁘장한 외모에 주목해 그에게 여성스러운 패션과 화장을 직접 추천해 주며 마크의 스타일링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글램의 첫 출발이 시작되었다. 이후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이색적인 부캐를 내건 데이빗 보위와 쫄쫄이 옷 같은 파격적인 패션을 한 프레디 머큐리에 의해 글램 록이라는 명칭이 생겼고 그 결과, 남성성만으로 가득하던 락 음악 시장에 중성적 느낌이 섞인 다채로운 색채가 첨가되었다. 70년대 중후반부턴 글램 록 밴드 키스(KISS)가 얼굴 전체를 분칠하는 파격적인 외견을 뽐내면서 글램은 락을 벗어나 여러 헤비 메탈 밴드들에게 까지도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키스는 비주얼만 보면 당장에라도 데스 메탈 같은 음악을 할 것 같은 인상이지만 엄연한 글램 록 밴드다. 그리고 결정적이었던 건 1978년, KISS의 멤버 진 시몬즈가 도움을 준 반 헤일런의 데뷔 앨범이 성공적으로 흥행하면서 주류 음악 시장에 헤비메탈이 안착하였고 그 덕에 팝 메탈, 글램 메탈 같은 용어들이 두루 쓰이게 되었다. 이렇게 70년대가 지나면서 80년대 초가 되었을 때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1981년 MTV의 개국이다. 글램 메탈의 등장은 타이밍이 절묘하게도 MTV의 개국 시점과 맞딲드리며 뉴 웨이브와 함께 그 수혜를 받게 된다. 이 때문에 화려한 복장으로 무장한 LA메탈 밴드 머틀리 크루가 제대로 날뛸 수 있는 판이 펼쳐졌다. 앞서 말한 대로 뮤지션의 스타성과 잘생긴 외모, 파격적인 퍼포먼스가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화려함은 사생활에도 적용되어 문란하고 양아치 같은 인상을 자아냈다. 또한 성관계, 약물과 같은 노골적인 가사 소재 때문에 정통 메탈 팬들에겐 반감을 사기도 했다. 메탈의 정통성을 계속 고수한 쪽은 '스래시 메탈'이라는 장르로 파생되기도 하였다. 글램 메탈의 유행을 선도한 또 다른 밴드, 본 조비는 그나마 얌전한 축에 속해 일반적인 대중들에게도 큰 지지를 받으며 글램 메탈 밴드 중에서도 가장 큰 성공을 일궈냈다. 사실상 글램 메탈 유행의 판도는 본 조비가 만들었고 선봉장으로서 판 전체를 이끌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다른 메탈 밴드들이 온갖 말썽을 부리는 와중에도 세련함을 계속 유지하며 대중의 지지를 지켜냈고 스키드 로우 같은 후배 메탈 밴드를 공연 때마다 오프닝을 서게 해주는 방식으로 밀어주며 글램 메탈이 대중들에게 퍼져나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소화해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80년대 말이 되자 글램 메탈의 유행은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건즈 앤 로지스는 그 시기 글램 메탈의 마지노선에 위치해 있었다. 건즈 앤 로지스는 전설적 기타리스트 슬래시, 이지 스트레들린과 베이시스트 더프 맥케이건 같이 실력파 락 뮤지션들이 모인 밴드로 보컬 액슬 로즈는 곱상한 외모와 맞지 않는 쇳소리가 섞인 강렬한 창법이 돋보이는 게 특징이었다. 이들은 글램 메탈의 모범생이었던 본 조비와는 달리, 머틀리 크루처럼 악동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멤버 중에서도 특히나 액슬이 이와 관련된 사례들이 몇몇 있었다. 공연 중 카메라를 들고 있던 한 관객이 거슬린다며 무대를 뛰쳐나와 그대로 공연을 중단해 버린다거나 녹음실에서 멤버의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맺은 후 그때의 소리를 그대로 노래에 삽입하는 기행을 벌였다. 이런 괴팍한 액슬의 성향 때문에 멤버 간의 불화는 꾸준히 있어왔고 90년대에 이르러선 이지를 시작으로 슬래시와 더프까지 밴드를 나가며 이로써 글램 메탈의 마지노선이 허망하게 무너지게 되었다. 글램 메탈의 몰락은 과도한 상업성으로 인한 비슷한 노래들의 양산과 매너리즘 그리고 약물 중독 또는 너바나의 등장이 원인이었다고 주로 언급되지만 위 얘기들을 보면 꼭 이 이유들이 있던 건 아니었다. 애초부터 멤버 개인의 의견, 색깔, 개성이 강렬했던 장르였기에 건즈 앤 로지스와 같은 일례처럼 대다수의 글램 메탈 밴드들은 멤버 간 불화를 겪었고 그걸 계기로 알아서 자멸해 버린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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