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웨이브란 펑크 락을 변화시킨 새로운 흐름의 파도다. 락 음악이라기엔 너무 얌전한 것 같고 댄스 음악이라기엔 또 잔잔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더 폴리스라는 노래는 뉴 웨이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 뉴 웨이브란 펑크 락이 8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대중성을 지니게 되면서 새로이 지어진 이름이다. 이 잔잔한 노래의 원천이 펑크 락이라는 점은 의아할 것이다. 그럼에도 뉴 웨이브는 얼터너티브 락의 기반을 쌓아 올렸던 포스트 펑크와 형제지간 사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 펑크는 뉴 웨이브와 함께 파생되었는데 기존 펑크를 재해석 하는데에 중점을 두었던 장르라고 이해하면 된다. 펑크 락은 좀 과격한 인상을 가지는데 여기서 뉴 웨이브라는 장르의 핵심적인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펑크 락의 세계관과 방향성은 공유하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졌던 것이다. 그 표현 방식의 변화는 바로 신시사이저라는 새로운 악기의 도입으로 이루어졌는데 본디 디스코 같은 댄스 음악에 주로 쓰였던 악기였기에 고상하지만 흥겨운 멜로디를 자아냈다. 그러면서 동시에 외견상의 모습도 변화를 겪었는데 특히나 의상 자체의 차이가 컸다. 펑크 특유의 가죽 재킷, 염색한 삐죽 머리는 사라지고 깔끔한 헤어와 정장으로 대체되었는데 사실 이러한 외견의 변화는 MTV의 등장이 직접적인 요인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MTV는 1981년에 개국 된 24시간 내내 음악 방송을 송출하는 미국 방송국인데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우리나라의 엠넷과도 같은 TV 음악 채널이다. 당시 음악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MTV의 출연이 필수적이었는데 과격한 인상을 가진 펑크 락은 애초부터 그 출연이 거부당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대중의 사회적 반감을 알아챈 펑크는 이미지 변신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리 음악이 낭만이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성공과 부유, 유명세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마침 70년대 말쯤부터 영국의 음악 평단은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 말콤이 하던 말을 인용해 토킹 헤즈, 더 런어웨이스 같은 펑크 밴드들을 뉴 웨이브라 부르기 시작했었다. 섹스 피스톨즈는 단 한 장의 앨범만으로 펑크의 상징 그 자체가 된 전설적인 영국 펑크 락 밴드다. 새로운 이름과 정체성을 얻은 펑크 밴드들은 이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기로 했다. 왜냐하면 MTV는 뉴 웨이브에 대해선 호의적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의 당시의 펑크 밴드들은 음악 주류의 흐름이 그쪽을 향했다는 걸 알고는 받아들인 것이다. 여기서 거부한 펑크 밴드들은 포스트 펑크, 노 웨이브라는 장르로 세분화 되었다. MTV가 처음으로 방영한 뮤직비디오가 더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인데 이 곡 또한 뉴 웨이브 였던 점을 생각해 보면 당시 AMTV가 추구했던 대중성이 어떤 건지 알 수 있다. 그러니 펑크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했다고 하는 것이 이러한 흐름 때문에 나온 것이다. 펑크 밴드들이 반항심으로 펑크 때려친다 라고 말하는 모양새가 아니었던 것이다. 외견과 복장, 새로운 악기와 연주 방식 그리고 장르의 이름 같은 겉모습들이 장르 이름인 파도(Wave)가 한번 물을 갈아엎듯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종합해 보자면 뉴 웨이브는 이전 장르 펑크 락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대중의 인식 변화와 새로운 악기의 도입으로 펑크 락이 변화해 생긴 결과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MTV의 등장과 뉴 웨이브의 유행은 팝 문화의 필수적 요소를 한 가지 추가시키게 되는데 그건 바로 뮤지션으로서의 스타성이다. 물론 이전에도 스타성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옛 시대의 스타들인 루이 암스트롱, 엘비스 프레슬리 모두 스타성이 제대로 발휘된 케이스다. 하지만 앞서 말한 스타성은 외견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MTV에 의해 뮤직비디오의 역할이 커졌고 그로 인해 뮤지션 개인의 패션과 스타일이 대중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듀란 듀란과 컬처 클럽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그들은 수려한 외모로 아이돌과 같은 인기를 끌었고 수많은 10, 20대들은 그들을 닮고자 하였다. 80년대의 팝 문화가 화려함으로 장식되었던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풍조는 90년대 초 너바나가 등장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뉴 웨이브는 비쥬얼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음악적 형태도 중요한 변환점이었는데 이 부분은 두 국가의 시점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다. 바로 영국과 미국이다. 먼저 영국에서는 뉴 웨이브가 펑크와 동시간대에 일찍이 유행되었던 터라 실험적인 사운드가 연구될 시간이 충분해서 그 덕의 이성적이고 차분한 스타일이 만들어졌다. 반면 미국은 애당초 디스코에 미쳐 사느라 뉴 웨이브의 유행이 영국보단 살짝 늦었다. 대신 디스코 때문에 댄스 음악적 속성이 가미되어 좀 더 대중 친화적으로 발전되었다. 영국식 뉴웨이브가 실험적인 경향이 강했다는 것은 더 폴리스의 음악 성격을 보면 알 수 있는데 1977년에 결성된 더 폴리스도 사실 처음엔 펑크 음악을 추구했었다고 한다. 데뷔 앨범이었던 "Outlandos d'Amout"도 지금이야 뉴 웨이브로 분류되긴 하지만 실은 펑크 락 기반에 재즈와 레게 리듬이 뒤섞인 복합적인 성격이 강한 음반이었다. 이는 깐깐함으로 유명한 더폴리스의 베이시스트인 스팅의 작곡 성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여러 장르를 소화할 수 있던 기타리스트 앤디 서머스와 드러머 스튜어트 코플랜드 덕분에 마음껏 실험적인 사운드들을 창조할 수 있었고 이 사운드들은 영국의 뉴 웨이브를 상징하게 되었다. 미국식 뉴 웨이브의 예시는 블론디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데 1974년 결성된 이 펑크 락 밴드는 처음 미국에선 이렇다 할 파장을 일으키진 못했지만 70년대 말 뉴 웨이브가 한창 성행하던 영국에서 디스코 속성이 섞인 3집 "Parallel Lines'와 4집 싱글 "Atomic'이 대성공을 거두게 되며 미국의 관심을 이끄는 데 성공했고 더군다나 디스코가 비슷한 시기에 멸망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뉴 웨이브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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