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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

얼터너티브 락

by 모던0117 2023. 11. 20.

얼터너티브 락이란 '대안'이라는 뜻의 영단어 (Alternative)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해당 용어는 90년대 초에 등장하였는데 헤비메탈 같은 기존 락 음악들의 대안이라는 새로운 락 음악들을 지칭하던 말이다. 사실 얼터너티브 락은 이러한 특징을 가진 음악이라고 딱 잘라서 구분하기 힘든 장르다. 그 이유는 현대의 다양한 락 장르들이 대체적으로 얼터너티브 락의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브릿팝 장르의 오아시스, 누 메탈의 린킨파크, 팝 펑크의 그린데이 또한 모두 얼터너티브 락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얼터너티브 락은 새로운 락이나 탈 장르화 성격의 락들을 두루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게 되었다. 얼터너티브 락의 시작은 칼리지 락을 기반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칼리지 락은 메인스트림(뜻 : 주류 음악시장)에서 벗어나 대학가나 지역 방송국에서 주로 소비되던 락 음악인 것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대학 가요제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칼리지 락의 시작을 논하기 위해서는 7, 80년대 락 음악 시장의 흐름을 알아야 하는데 이전 70년대는 체재의 반발심과 저항 정신으로 똘똘 뭉친 펑크 락이 락 씬을 지배하다시피 했다. 저번 시간의 설명한 저항정신과 펑크 정신이 맞다. 하지만 80년대에 들어서는 대형 소속사 기업들이 생겨나며 대중음악 시장을 좌지우지하기 시작하면서 돈이 되는 음악이라고 불리는 글램메탈과 아레나 록(대형 공연장에 어울리는 화려한 락 음악)이 대중음악의 주류 되었다. 투어도 주기적으로 돌고, 멤버들의 비주얼도 적극 어필해 대중의 인기를 쉽게 얻을 수 있었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그런 노골적인 상업성은 반항 정신을 가진 펑크 락에겐 죄악과도 같았으니 이들은 보다 자유로운 음악을 하기 위해 메인 스트림이 아닌 대학가 지하 클럽의 무대들로 향했다. 이렇게 칼리지 락의 역사가 시작이 된 것이다. 아마 미드나 하이틴 영화를 보면 대학에서 공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인데 이때의 칼리지 문화가 시작된 이후에 그 잔재로서 대학에 공연 같은 것이 아마 남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금 흔히 이야기하는 인디 음악들의 시초격인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칼리지 락을 인디 락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 시기 칼리지 락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밴드인 R.E.M이 인디 씬을 장악하였고 그들의 상업적 성공은 한 지역구에서만 유행했던 칼리지 락을 전국구 단위로 퍼지게 만들었다. R.E.M은 메인 스트림에 입성하게 된 후에도 음악적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음악사에 비위를 맞춰 상업성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본인들의 음악적 태도와 개성을 가질 것인지를 두고 딜레마를 겪었지만 R.E.M은 이 모두를 쟁취한 이례적인 케이스였다. R.E.M의 성공으로 인해 세간은 이들을 얼터너티브 락으로 규정하며 새로운 락의 흐름으로 보았고 여러 음악 레이블이 기존의 락 대신 인디밴드들에 눈독을 들이는 계기가 되었고 이러한 과정 중에서 너바나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87년에 창설된 너바나는 같은 해 설립된 인디레이블에서 활동하다 1991년, 메이저 레이블이었던 DGC와 계약하면서 2집인 "Nevermind"를 발매했다. 그리고 당시 팝의 황제인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 대신 빌보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만들었다. 너바나의 등장은 기존의 대중음악 시장에 있어서 갑작스러운 파도 같은 존재였고 메탈을 쇠퇴시키고 주류 문화의 근간을 뒤집었다. 여기서 말하는 주류 문화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처럼 멋지고 화려했던 비주얼이 주된 분위기인 것을 뜻한다. 반면에 너바나의 이미지는 그런 깔끔한 느낌보다는 극명히 반대되는 비주얼이었다. 정장 차림의 마이클 잭슨과 대비되게 맴버 전원이 맹한 눈에 늘어진 티셔츠, 그리고 떡진 머리를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너드나 폐인 같은 진짜 음악만 할 것 같은 골방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비쥬얼을 특징을 띄었던 너바나의 음악을 그런지 락이라 불렀는데 그런지란 '지저분한', '더러운'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 한마디로 말해서 거지꼴 같은 락이란 뜻이다. 화려한 주류 장르를 후줄근한 비주류가 싸우는 입장에서 이것이 가능했던 요인 중 하나는 보컬인 커트 코베인의 외모 때문이다. 커트의 외모와 너바나 특유의 힙한 스타일로 인해 이들을 따라 하는 파생 밴드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멋진 노숙자, 퇴폐미, 너드미 라는 이미지는 이 사람으로 인해 수요가 생긴게 아닐까 한다. 비주류가 주류를 집어삼키는 시대가 되었고 락의 새로운 대안을 낸 너바나의 그런지 락은 당시 음악 시장의 정점에 오르면서 얼터너티브 락 자체를 대변하게 되었다. 그런지 락의 음악적 특징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일렉기타용 이펙터인 디스토션을 사용한 사운드와 특유의 우울감과 무기력, 패배주의적 정서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이 특성들은 2집 Nevermind의 수록곡 Smells Like Teen Spirit에서 느낄 수 있는데 축 처지는 부분은 확 우울해지지만 내뱉는 부분은 울분과 같은 분노를 발산하였다. 이는 커트 코베인도 초창기엔 펑크 락을 추구했기에 나타났던 음악적 색채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너바나가 만든 변화의 흐름은 기존 락 메탈 팬들의 눈초리를 받았다. 커트는 펑크 락을 동경했고 이름난 락 뮤지션 정도만이 되기를 기대했지만 커트는 시대의 아이콘으로써 한 장르의 선봉장이 되어버렸다. 그로 인해 언론의 지독한 관심과 괴롭힘을 받았고 그로 인해 커트는 마약과 자기혐오에 빠진 삶을 살다가 정신이 쇠약해져서 1994년 4월에 자신의 집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는데 당시에 나이가 뮤지션들에겐 죽음의 나이라 말해지는 27살에 죽어서 또 한 번 27세 클럽이라는 말이 세상의 입에 올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현장에서는 얼터너티브 락의 초석이었던 R.E.M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커트 코베인의 사망 이후 시대의 아이콘이 사라져서인지 자연스레 그런지 또한 쇠퇴를 겪었다. 동시에 락의 시대도 동시에 저물어 가며 커트는 '마지막 락 스타'라는 이명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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